시계태엽 오렌지

책을 읽고 JNSC 2009/03/29 19:50 posted by 윤기완
나의 대부분의 문화 경험 순서인 영화 우선 감상후 원작소설읽기 패턴의 장점은, 원작의 아우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팬보이를 자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미 시각적으로 틀이 완성되어버려서 오히려 영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두가지 방법에 있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두가지를 개별적으로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참으로 인생살이 편해질거란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전체주의와 개인주의의 차이를 극명하게 다루고 있다. 작가 앤서니 버지스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지 못해서 그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객관적으로 정중앙에서 두가지에 대한 선택을 순전히 독자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초반부 주인공 알렉스와 그의 패거리의 악행은 양심없고 잔악무도하며 역겹고 끔찍하기까지 하다. 교도서에서의 끔찍한 치료로 도덕적 거세를 당한뒤, 출소해서는 예전에 자신이 한 악행이 오히려 자신에게 돌아오고 다시금 치료를 받고 자유의지를 가지게 되는 알렉스는 결국에는 어른이 된다. 본성은 바꾸지 못하지만 그는 어쨋든 어른으로서 살아가게된다.

째깍 째깍

알렉스는 이유없는 폭행, 강간등을 벌이다 결국 경찰에 잡히게되 교도소로 들어가게된다. 여기서 일반적인 교도와 다른 루도비커라는 이름의 범죄자 교화작업을 받게되는데 이 루도비커의 궁극적인 결과는 인간 스스로가 부도덕한, 폭력적인 행위를 신체적으로 거부하게 됨으로써 미연에 그런행위를 하지 못하게하 방지하게되는 것이다. 의지와 상관없이 '차카게'살아가는 알렉스는 점점 자유의지를 상실해가며 국가가, 조직이 원하는 그저 하나의 구성원이 되어간다. 국가는 스스로의 체제안에 모든걸 가두고 모든 인간은 그저 하나의 부품으로써 시계태엽이 돌아가게 만드는 존재일뿐이다. 이런 하찮은 부품 하나에 개인의식 이라니, 자신들의 시계를 지키기 어렵게 될것이다.

사회인으로 성장한다는 것

하지만 알렉스의 악행을 놓고 보자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위들이다. 동정을 할 여지는 전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런 행동이 나올수 있는, 근본적인 개인의 자유의지자체를 박탈 하는것은 반인륜적이며 부도덕한 행위이다. 의식과 다르게 그들의 기준에 있어서 '차카게'만 행동하도록, 도덕적 잣대의 기준마저 거세해버리고 자신들이 의도한 방향으로 행동하게 만든, 이런 인간은 과연 인간다운 삶을 살아 갈 수 있을까?
알렉스는 말미에 다시 예전의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치료를 받게되었다. 다시 예전처럼 나쁘고 고약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되찾았다. 하지만 그는 결혼을 하고 자식을 둔 '어른'이 되어 예전과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정확히 그렇지 않은 척을 한다. 본성을 숨기며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열심히 시계가 돌아가도록 움직인다. 

어쨋든 시간은 흘러간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선 여러가지 얘기가 많다.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만큼은 인간의 본성은 추악하고 악랄하다. 하지만 이런 본성이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때에 그 구성원을 사회가 어떻게 교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있다. 소설속 루도비커로 사지만 남은 그들의 입맛대로 맞춘 인간을 양성해 내는것이 과연 옳은 행위인지 묻고있다. 과연 체제에 딱 들어맞게 맞춘 부품형 인간이 시계를 가장 잘 돌아가게 만드는 것일까?

a clockwork orangea clockwork orange

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작가 : 앤서니 버지스
1962년作

저작자 표시

Trackbas address :: http://www.level18.net/trackback/4 관련글 쓰기